나는 왜 실버타운에 입주하였는가?

 

S실버타운 정혜영 (가명, 82)

한참 본 책자의 원고를 준비 중인 2014년 4월, 저자의 모친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친은 저자가 실버타운에 관련된 책을 쓰고 있던 사실을 알고 있었고, 꼭 필요한 책자인 듯 하니 열심히 해 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러던 중 당신 친구 분이 경기도에 위치한 S실버타운에 입주한지 꽤 되어 어떻게 지내는지 만나러 갈 예정이니 관심 있으면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입주자 인터뷰도 하고, 실버타운 측에서 보여주는 세대가 아닌 실제로 입주민이 살고 있는 내부도 구경하고 싶어 쾌히 승낙을 하였다.

경기도에 위치한 S실버타운은 2009년 ‘노인을 위한 이동 보조로봇 프로젝트’ 때 이미 두 번이나 가본 적이 있어 낯익은 곳이다. 국내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이곳을 우연한 기회에 모친과 함께 갈 수 있어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곳을 보고나면 실버타운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실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차로 모친을 모시고 가는 길에 그 실버타운에 계시는 분이 중학교 동창분이며, 학교 때 공부도 잘 했고, 그동안 자주 만나왔고, 남편 되시는 분은 높은 직급의 군인 이셨는데 오래전 작고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은 다 면회 다녀왔는데 나는 이제야 간다고 하셨다. 면회? 실버타운도 일반 주택과 똑 같은데 모친은 면회라는 표현을 하셨다. 마치 어느 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한 친구 분 병문안 가듯이 말이다. 그러면서 약간 걱정스러워 하는 모친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잘 나가던 친구가 자녀들도 많은데 어찌 실버타운에 들어갔을까?’ 하는 안타까움 반, 궁금증 반을 가지고 계신 듯 했다.

오늘은 모친 이외에 다른 중학교 동창 두 분도 더 오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네 분의 80대 초반 여중 동창생들이 모이는 곳에 50대 초반의 남자가 끼는 묘한 조합이다.

S실버타운에 도착해 차로 진입로를 지나 리빙플라자 건물쪽으로 접어들면서 모친은 약간 놀라는 듯 했다. 잔디로 잘 조성된 이곳이 리조트 같기도 하고, 무슨 대학 캠퍼스 같기도 하였을 것이다. 차를 리빙플라자 지하에 파킹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병아리떼 마냥 줄을 서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어린이집 아이들. 언제나 이곳에 오면 보게 되는 풍경이다. 입주 타워동에 사시는 것 같은 남성 어르신도 한분 탔다. 아이들, 어린이집 선생님, 실버타운 어르신, 모친 그리고 나. 한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동안 있었는데, 함께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처음 본 할아버지에게 배꼽인사를 하고 사라지는 아이들. 같이 탄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기는 했지만 뒷모습이 귀엽다.

리빙플라자를 나와 타워동으로 걸어서 올라갔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잘 닦여진 길옆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막 나온 새잎들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 아랜 개나리가 한창이다. 연못 옆을 지나는데 바랑개비가 세워져 있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2009년 여름에 처음 왔을 때에는 바랑개비는 없고 오리 떼가 놀고 있었다.

타워동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자 프런트데스크의 남자직원이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정혜영님 약속 하고 왔다고 하니, 입주세대로 전화를 걸어 확인한 후 엘리베이터 쪽으로 안내한다. 넓은 로비와 실내인테리어는 발리에 있을 법한 리조트나 콘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3층으로 올라가니 정여사님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두 동창 분은 오래간 만이라고 인사를 하고, 모친은 나를 아들이라 소개시키고. 낯이 익다. 20년은 되었을까? 아주 오래전 한 번 뵌 적이 있다.

안전바가 설치되어 있는 복도를 따라 입주세대 앞에 다다르자 목에 걸고 있는 전자카드키로 문을 여신다. 안으로 들어가니 남향인지 눈이 부시도록 환했다. 옅은 커튼이 없었으면 더 눈부셨을 것이다. 46평이라고 하는데 전용율이 50% 정도니까 실평수는 23평정도 되리라. 안방 1개, 작은방 1개, 넓은 거실 겸 주방, 화장실 등 여느 아파트나 오피스텔과 다를 바 없다. 화장실에 욕조가 없고 대신 샤워기 아래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으며, 여기저기 비상벨이 있는 것이 좀 색다른 점이다. 부엌은 요리할 때 사용하는 주방용품이 거의 없고 전자레인지, 싱크대, 인덕선 렌지, 냉장고 등 꼭 필요한 것만 있었다. 안방에는 운동용 사이클이, 거실에는 소파, 그 위 벽에는 돌아가신 부군 및 자녀, 손자들과 함께 찍은 큰 가족사진이 눈에 띤다. 거실 통유리 창가를 통해 7만평 실버타운 부지와 기흥호수를 내려다보면서 모친은 전망이 참 좋다고 감탄을 하셨고, 세대 내부도 생각보다 좋았던지 안색이 금방 환해 지셨다. 아파트와 구조가 똑같다는 말씀도 빠트리지 않으셨다.

조금 후 다른 두 동창 분들도 도착하셨고 드디어 여학교 동창 모임이 시작되었다. 서로간에 야!, 자!, 하면서 허울 없이 이름을 부르는데 모친의 이름을 성은 빼고 이름만 친구처럼 불러대니 내 입장에서는 좀 낯설었다. 아니, 친구처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친구란 사실을 내가 잠시 깜빡한 것이다. 10분 정도 지나자 이야기꽃이 만발하면서 갑자기 더 시끄러워졌다. 좀 우스운 이야기이고, 그리고 모친에게 죄송한 말씀이지만 수다스러운 여중생들 모임과 다를 바 없었다. 모두들 옛날 여학교 때로 돌아가신 듯 했다. 분위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목소리나 표정도 여학생과 닮아있다. 그분들의 시간여행에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정여사님은 실버타운에 입주한 가장 큰 이유는 밥하기 힘들어서라고 하셨다. 관절염에 다리가 불편해 걸을 수는 있지만 오래 걷거나 서 있지는 못하신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혼자 드시자고 식사준비를 위해 시장 보는 일이 영 불편하셨다고 한다. 부군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꽤 오랜 시간을 혼자서 사신 듯 했다. 관절염이 심해지면서 집안에 간병인 겸 파출부를 두었는데, 돈은 돈대로 들고, 해주는 음식은 입에 안 맞는데다가 잔뜩 해 놓고 남은 음식을 아까운 줄 모르고 버리는데 화가 많이 나셨다고 한다. 배곯던 시절이 있었던 옛날 분들에게 음식은 그 이상의 무엇이다. 그런데 함부로 버리는 모습을 보면 돈을 떠나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두 번째라고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실버타운을 생각하신 그 다음 이유는 자녀 때문 인 듯 했다. 자녀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거나, 정여사님을 방치해서라기보다 오히려 자녀들이 너무 자주 찾아오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번 주는 첫째 부부가, 다음 주는 둘째 부부가, 그다음은 셋째가, 이렇게 자기들 끼리 순번을 정해서 찾아오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한다. 아!, 내가 다리가 불편한 것이 아이들에게는 자주 찾아와야 하는 이유가 되고, 순번 정하다 보면 자기들끼리도 서로 부담이 되겠구나 싶어 자녀들 맘 편하게 해 주시려고 실버타운에 입주하셨는 것이다.

경기도 분당에 혼자 사시기에 그리 작지 않은 평수의 아파트에 거주하셨던 정여사님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데 대단하신 분이다. 실버타운에 대한 정보를 여기저기서 입수해 가평 C실버타운, 용인 M실버타운, 분당 H실버타운, 그리고 여기 S실버타운 등 자녀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혼자서 서너 곳을 답사하고 입주상담을 하셨다. 마지막에 S실버타운을 마음속에 결정하고 나서 자녀들을 모두 모아놓고 실버타운으로 들어가겠다고 선언을 하신 것이다. 그러자 아들 며느리 할 것 없이 ‘어머니 제정신이시냐’며 극구 반대를 하는데, 그 반대하는 소리가 싫지 않으셨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들이 태상왕으로 물러나겠다고 하면 신하들이 극구 말렸던 모습이 생각나서 빙긋이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를 실버타운에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렇게 실버타운에 보내게 되었을 때 자녀 본인들의 마음도 편치 않을 수 있어 저렇게 말리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누구의 마음이 편한 것이 좋을까?. 그것이 과연 자녀들일까? 아니면 어머니 자신일까? 정여사님은 이 두 가지를 놓고 많이 고민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혼자서 관절염 때문에 하루 세 번 식사준비 하는 것이 정말 지긋지긋해 실버타운에 입주를 결심 하신 것이다. 이곳 S실버타운 식사가 좋으니 이따가 점심에 같이 먹자고 하신다. 이미 4명이 온다고 입주민 전용식당에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정여사님은 주일이면 S실버타운에 방문오시는 신부님이 미사를 드려주고 있어 꼬박꼬박 쉽게 미사참여를 할 수 있음에 만족해 하셨고, 노래를 잘 하셨는지 실버타운 합창 동호회에 가입하여 매주 한두 번 합창연습을 하시고 계셨다. 동창 친구 분들이 ‘그래 너 참 노래 잘하잖아?, 라고 추켜세워 드리자. ’그런데 프로야 프로. 지휘자도 그렇고, 합창부 할망구들도 다 음대를 나왔는지 노래 너무들 잘해. 내가 처음에 으쓱해서 갔다가 노래하는 것 보고 야코가 팍 죽었다니까. 아니 처음 갔는데 합창 동호회 가입하려면 오디션도 봐야 한다잖아‘. ’그래서 오디션 봤어?‘. ’보기는 봤지‘. ’그래 붙었어? 붙었으니까 하겠지?‘. ’응, 붙기는 붙었지‘. 말씀은 저렇게 하시지만 얼굴에는 자부심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합창부에서 나이가 제일 많기는 해. 80대가 별로 없어, 다 70대지‘.

그다음 친구 분 말씀에 내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런데 합창부 거기 잘생긴 남자 하나 없어?. 여기 온지도 꽤 되었는데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한 번씩은 다 보았을 거 아냐?. 어때, 괜찮은 남자 없냐구?’. ‘음, 그게… 관망중인데 아직은 눈에 딱 띠는 사람이 없네. 그리고 되게 콧대 높게 굴어~. 리빙플라자 은행에서 순번 기다리다가 내 옆에 앉았는데 말을 붙이더라고. 4층에 산대대. 머리는 하얀데 뭐 그냥 봐줄만 했어. 그런데 나보다 훨씬 어려. 76세래. 내 나이를 물어보기에 안 가리켜 줬지. 여자 나이는 왜 물어? 지가 뭐라고’.

여중생들 모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남자 이야기가 장장 30분간 이어졌다. 내가 투명인간이 되었다. 이곳에서 풍기문란으로 운영측에 걸리면 혼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등, 정말 여학교 기숙사에서 살고계신 듯 했다. 그러다 나중에 이런 이야기라도 해야 웃지 하면서 서로 웃으셨다.

점심시간이 되어 같은 건물 7층에 있는 입주민 전용식당으로 갔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정복을 입은 여직원들이 각 입주민이 식탁에 앉으면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잡곡밥에, 국 그리고 3가지 반찬에 와플이 있었다. 배식용 식판이 아니라 각 음식이 도자기 그릇에 담겨 있어 품격을 더했다. 식사 참 잘나온다고 모친은 몇 번씩 말씀을 하셨다. 홀로되신지 10년째인 모친이 혼자서 어떻게 식사를 하시는지 본적이 없다. 매사에 정확하고 본인 관리가 철저하신 분이니까, 아마도 끼니를 말 그대로 때우시지는 않으시리라.

식사 후 다시 입주실로 돌아가는 도중에 입주실 옆에 20여명 정도가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게실이 있었다. 넓은 통유리 너머로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고 이러한 휴게실이 층마다 있다고 한다. ‘애들 다 오고 손주들까지 몰려오면 열 댓명 되잖아. 그러면 여기에서들 이야기 하고 놀아. 아무래도 방은 어수선 하니까’. 휴게실의 용도를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

‘처음엔 어머니가 가신 실버타운이 어떻게 생겼나 애들이 바짝 긴장했는데, 몇 번 와서 보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좋았나봐. 부대시설 보고 함께 식사 하고 나서는 ’이제 되었다!‘ 하고 마음을 턱 놓은 모습이 보이더라고. 애들 얼굴이 요즘 너무너무 편해 보여. 근데, 그게 좀 한편으로 섭섭하더라고’. 휴게실 의자에 몸을 기대어 가렵지 않은 것 같은데 얼굴을 긁으신다.

‘저기 리빙플라자에 별별 것 다 있어. 스쿼시, 수영장, 골프장, 헬스, 뭐 다 있어. 근데 난 안가. 무릎이 아파서 거기까지 가는게 일이야. 가도 뭐 내가 할 만한 것도 없고. 그냥 여기 복도가 기니까, 매일 한 바퀴 돌거나, 밥먹고 내려와 왔다 갔다 해. 그게 내 운동이야. 그거 꽤 운동돼. 그리고 여기 안전바 잡고 허리 운동도 하고’ 복도에 있는 안전바를 두손을 잡고 앞으로 숙이는 허리운동 시범을 직접 보여주신다. 그러면서 저 좋은 시설 이용하려면 한 살이라도 젊어 건강할 때 와야지 이렇게 관절염 다 깊어지면 그림의 떡이라는 것이다.

입주실에 다시 들어가니 같은 S실버타운 성당 다니는 교우인데 피자 먹여야 한다고 정여사님이 어디로 전화를 걸었다. 조금 후 상담실 남자직원인 J씨가 들어왔다. 30대 중반 이란다. 결혼도 해서 아이도 있고. J씨는 아들이나 되는 냥 정여사님과 사사로움이 없었다. 이제 6명으로 늘어난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피자를 간식으로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머니 안 그래, 여기 풍기문란이 어디 있어. 괜한 소리지. 가만있자. 은행에서 만난 머리 흰 아버님. 잠깐만,,, 양복주머니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꺼내 펼쳐 보더니. 아~ 그분 4xx 호에 사시네. 이사 오신지 두 달밖에 안되는데 점잖으셔. 마치 막내아들처럼 말을 놓는데 정여사님을 싫지가 않으신 듯 했다. ’ 점잖아? 그래?.‘ 정여사님은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시고 눈만 깜박이셨다.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웃고 떠들다 보니 5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다. 모친을 다정하게 부르시더니 ‘K야 너도 일루 들어와. 나하고 같이 살자. 친구들 몇 명 있으면 정말 좋겠어. 아직은 내가 여기 파악이 안 되서 친구를 못 사귀었거든. 너희들 있으면 딴사람 친구 사귀고 말고 할 것도 없지. 내가 알고 있는 영감탱이 하나 있는데 일루 들어오라고 꼬시고 있어. 그 영감탱이 혼자 사는데 재산이 수십억도 더돼. 그런데 혼자 밥해먹기 위해 시장 간다고 검은 비닐봉지에 두부고 머고 사서 뒷짐지고 다니는데 왜 그리 궁상맞게 사는지 몰라. 나보다도 한참 어린데, 남정네가 검은 비닐봉지에 먹을 거라고 시장가서 사가지고 담고 다닌다니까.’

4시 반이 되어 모친을 모시고 정 여사님 집을 나섰다. 남은 두 친구 분들은 고스톱 한판 치고, 이따가 실버타운 셔틀버스 타고 역까지 가면 된다고 먼저 가라고 하신다. 그래도 두 분이 남아 계셔서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자주 놀러오라고 하신다. 그냥 오며 가며 아들처럼 들리라고.